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로알 아문센 vs 로버트 스콧 (문단 편집) ==== 스콧 ==== 스콧은 탐사대를 해군 장교인 스콧 대령 자신을 비롯해 군인과 과학 및 여러 전문가 위주로 편성했다. 물론, 목적은 남극점 도달 외에도 '''과학 탐사를 위한 것이었다.''' [[파일:Lawrence Oates.jpg|width=200]] * 로렌스 오츠 (Lawrence Oates, 1880-1912) - 육군 기병장교 출신. 스콧 탐사대 구성원 중에서 '''가장 유능한 인물'''이었다.[* 사실 가장 유능한 정도가 아니라 리더인 스콧보다도 훨씬 나은 인물이다.] 탐험에 데려간 말들을 돌보는 것이 주 임무였는데, 나중에 말 관리가 너무 힘드니까 스콧에게 그냥 관리를 포기하고 일을 시키다가 죽으면 잡아먹자는 제안을 했으나 무시당했다. 보어 전쟁 당시에 총상을 입었는데 당시 의료 기술로 총탄을 제거하는데 실패하여 발목 뼈에 총탄이 박혀 있었고, 이 총상이 악천후와 영양실조에 겹쳐 심해지자 결국 자신이 탐험대의 귀환을 늦추고 있다고 생각해 눈보라가 칠 때 스스로 텐트 밖으로 나가서 죽음을 맞이했다. 안타깝게도, 다른 대원들과는 달리 구조대가 시체를 끝내 찾지 못했고, 겨우 오츠가 들고 나간 침낭만 수거했다. 스콧과는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사이가 매우 좋지 않았다. 자신의 일기에 "스콧의 조랑말들에 대한 무지는 엄청나다.", "나는 스콧이 너무 싫기 때문에 이 일이 영국의 탐험이 아니었더라면 벌써 때려쳤을 것이다." 라고 적기까지 하였고, 스콧 역시 이런 그를 비관주의자라고 비꼬았다. 그러나 정작 오츠가 스스로 텐트 밖으로 떠나 죽음을 선택했을 때, 스콧은 일기에서 진정 영국 신사다운 행동이었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공교롭게도 그가 죽은 날은 딱 32번째 생일인 3월 17일이었다. 스콧 일행은 그가 무슨 생각으로 밖에 나가는지 다 눈치챘으면서도 뭐라고 하지 못했다. [[파일:Henry Robertson Bowers.jpg|width=200]] * 헨리 로버트슨 바워스 (Henry Robertson Bowers, 1883-1912)--[[헨리 바워스|어?]]-- - 해병 장교 출신이다. 대원들 중에서 가장 체구가 좋고 힘이 셌다고 한다. 남극 탐험에는 조금도 경험이 없지만 [[낙하산 인사|왕립지리학회의 회장의 추천을 받아 스콧과 함께 남극으로 동행했고]], 나중에는 탐험대에 투입됐다. 하지만 이것은 큰 실수였다. 정상까지 짐을 끌 목적으로 가장 완력이 좋은 바워스를 차출했던 것 같지만 애시당초 채집한 물건이며 탐험에 도움도 안되는 것을 안버린 스콧의 고집이 원인이었다. 원래는 4명이 쓸 식량과 연료를 5명이 쓰게 되자, 물자가 부족해졌다. 대원 2명이 죽고 나자, 마지막에 스콧, 윌슨과 함께 텐트에서 얼어죽었다. 그래도 성격은 친절하고, 활기차고, 부지런해서 동료 대원들에게 평판이 매우 좋았다. 오츠와는 사사건건 반목했던 스콧도 그는 높이 평가했으며, 죽기 전 그의 어머니에게 대신 쓰는 편지에 "나는 이 탐험의 마지막을 두 용감하고 고귀한 신사들과 끝내고 있습니다. 그 신사 중 한 명은 당신의 아들입니다. 그는 나의 가장 친하고 믿음직한 친구가 되었으며, 나는 그의 올곧은 성품이 굉장히 마음에 들고, 힘든 상황에도 그는 끝까지 용기있게 활기찬 모습으로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라고 칭찬을 남겼다. 그러나 애당초 남극 경험 자체가 없는 [[낙하산 인사]]였기 때문에, 정작 가장 중요한 탐험에 있어서는 스콧 일행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 [[파일:Edgar Evans.jpg|width=200]] * 에드거 에번스 (Edgar Evans, 1876-1912) - 해군 부사관 출신으로, 스콧도 있었던 [[어니스트 섀클턴]]의 디스커버리호의 탐험에 간 경험이 있었다. 남극점에 도착하기 전에 손을 베이고, 손과 얼굴에 동상을 입는 부상으로 몸과 정신이 심하게 지치기 시작했다. 게다가 2월 14일에 비어드모어 빙하를 내려오던 중, 크레바스에 세 번이나 빠지면서 심한 [[뇌진탕]]을 겪었다. 이때 뇌손상이 일어난 것인지 스콧의 일기에 따르면 갑자기 길을 막거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중얼거리는 등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결국 2월 16일에 쓰러져서 대원들은 그를 썰매에 태워서 갔지만, 결국 [[혼수상태]]에 빠지고 그날 사망했다. [[파일:Edward Adrian Wilson.jpg|width=200]] * 에드워드 에이드리언 윌슨 (Edward Adrian Wilson, 1872-1912) - 의사 및 과학자 출신으로 에번스처럼 섀클턴의 티스커버리호의 탐험에 동행한 적이 있다. 에번스와는 달리, 섀클턴, 스콧과 함께 남극 탐험을 하다 돌아온 적이 있다. 남극에서 [[황제펭귄]] 연구를 했는데, 이때 얼어죽을 뻔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자세한 것은 [[로버트 스콧]] 문서 참조. 다만 이런 위험천만한 계획을 강행한 스콧도 잘 한 건 없지만, 펭귄알을 채집하러 가자고 스콧을 설득한 것은 윌슨이라서 윌슨도 책임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스콧과 바워스와 함께 마지막에 얼어죽은 인물로, 스콧이 가장 의지했던 대원이다. 스콧은 일기에 그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보다시피 이들은 각자 군 장교와 [[부사관]] 및 지질학자, 기후학 및 여러모로 학문과 과학 분야에서는 전문가들이기는 했지만, 결국 탐험에서 가장 중요한 '생존'에는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프로 대 아마추어인 상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